북극곰을 이제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하던 그는 지구를 구하는 ‘착한 디자인’을 하는 남자다.
지구를 구하는 ‘착한 디자인’
일찍이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디자인은 윤리적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항상 자신이 만든 제품의 재료와 제작방법은 물론 사후의 폐기 문제나 재활용 가능성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빅터 파파넥의 말을 온전히 자기 그릇으로 담아낸 사람이 여기 있다. 가구 디자이너 김경원은 디자인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전시회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이 머릿속에 각인된, 이제는 곧 영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북극곰처럼 보기 드문 디자이너다.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그가 에코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 신문지로 구둣주걱 작품을 만들면서 남은 재료들 때문이었다. 버리기가 아까워, 남은 부산물을 무작정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가 만든 것이 바로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보였던 ‘사방탁자’다. 재활용에 대한 김경원의 감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사방탁자 제작 이후에 남은 재료들을 전시회 한 켠에 수북이 쌓아두었다. 이것은 작품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재활용하려는 의도이자, 차기 작품의 원재료로써 활용 가능성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남은 재료들은 ‘날으는 꽃종이’와 ‘남겨진 벤치와 스툴’로 다시 태어난다. 그가 평소에 이야기하는 친환경의 디자인 철학이 두 작품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날으는 꽃종이’는 쉽지 않은 도배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다.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꽃무늬 벽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이 작품을 기분이 우울할 때 이용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마음속은 화사한 꽃밭이 될 것 같다. ‘남겨진 벤치와 스툴’은 말 그대로 ‘남겨진’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남겨진’이라는 형용사는 혼자 내버려진 것 같은 쓸쓸함을 풍기는 단어이지만, 김경원의 작품에서라면 다른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 잔잔히 흐르는 수면처럼 부드러운 곡선과 다부지고 매끄러운 표면까지, 자투리를 사용했다고 얕보기에는 너무 고풍스럽다. 이만하면 ‘남겨진’ 재료들에 대해 감사해야할 정도다.
디자인은 물론 어떠한 행위를 하든 간에 환경을 항상 염두에 두는 김경원이 가구 디자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용자에 대한 배려다.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에 한참 생각을 하더니 예를 들어주었다. “일본의 도쿄에 슈사쿠 아라카와(Shusaku Arakawa)와 매들린 진스(Madeline Gins)가 만든 ‘운명을 거역하는 집’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운명을 거역하는 집은 노인들을 위한 아파트라고 하기엔 외관과 구조가 복잡하고, 불편하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의 진면모는 노인들에게 생활 속의 운동량을 제공하겠다는 데에 있죠. 인간을 편안하게만 만드는 게 정작 당사자에게는 이로운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경 문제를 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이롭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일 역시 지구를 구하는 ‘착한 디자인’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의 최근 작품 ‘For Him&Her’에서 사용자를 상호 소통적인 공간으로 안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소통을 가구를 통하여 소통이 눈에 보여지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김경원의 이용자에 대한 배려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착한 디자인’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녹아있어야 하며, 환경을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함을 김경원은 자신의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