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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제’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 / 수경스님

성덕 2016. 1. 28. 21:53

[특별기고] ‘경제’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 / 수경스님

들리느니 ‘경제 위기’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너나없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아이엠에프 때보다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엄동입니다. 천만다행히도, 얼어 죽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그럭저럭 세상은 돌아갑니다. 정부 말대로 아이엠에프 때와는 상황이 달라서인지, 나라의 경제적 기초체력이 튼튼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나마 세상이 돌아가는 힘은 우리가 잊고 있는 다른 가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추운 겨울, 우리를 살리는 건 ‘집값’이 아니라 ‘집’ 그 자체입니다. 생명의 온기를 나누게 하는 집 말입니다. 이때의 집은 집값으로 환원되는 수치가 아니라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타워팰리스든 쪽방이든 그 가치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장이라는 사람이, 대졸 실업자가 쏟아지면 “현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고 한 모양입니다. 말대로라면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시원찮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실업률’이라는 수치로 환원될 수 없는 ‘가족’의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개념이나 수치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삽니다. 오로지 경제 타령입니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이엠에프 때 주식 사고 부동산 사고 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도 봤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시국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야박스럽게 들리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가치가 경제에 종속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의 경제 위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위기가 온다 해도 버텨낼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성찰이 이토록 빈약할 수 있겠습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건만, 정부에서 다시 ‘대운하’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경기 부양을 내세워 찬성 여론을 유도할 속셈이 뻔히 보입니다. 토건업자들이나 예정지에 땅을 사 둔 사람들은 당연히 찬성할 테고, 환경론자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경제에 발목을 잡는 사람들로 매도되겠지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경제론자와 환경론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경제가 아닌 다른 가치를 무겁게 여기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찬반을 두고 분열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빈부 양극화의 골은 더 심해지는데 지역이나 가치관에 따른 갈등까지 더해질 형국입니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부자들의 양보와 서민들의 인내를 통해 긴 호흡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진정한 국민 화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를 이명박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직 경제 논리로 국토를 헤집고 국민들 분열시킨다면 경제난 극복은 물론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 회복 기회도 잃을 것입니다. 
경제 위기 극복과 관계없이 주요 강 정비 사업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운하의 기초 작업으로 보이는 계획을 접고, 전문가와 학자 시민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항구적으로 강을 살리는 길을 찾아야겠지요. 물론 임기 내에 완성하겠다는 조급증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집 ‘값’보다는 집, 실업률보다는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 폭풍이 와도 떠내려가지 않는 ‘땅’의 가치가 옹호되지 않으면 우리 모두 ‘경제라는 우물에 빠진 돼지’가 될 것입니다. 
생명·평화·공생과 같은 가치야말로 현실적입니다. 이 추운 겨울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체 없는 금융자산’ 따위의 경제적 가치야말로 허구입니다. 
수경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