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인 광주에 갔다. 일년이면 서너번 밖에 가지 못하는 곳. 뭐~ 바쁘다는 핑계때문이겠지만. 모처럼만에 여유를 가지고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얼마 안있으면 사라져 버릴 동네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일신방직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방직공장이다. 지금은 이런 형태의 공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공장이 돌아가기는 하나보다. 예전 우리엄마도 이곳에서 일을 하셨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일신방직을 지나 광주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 임동오거리..자전거로 길을 건너는 할아버지 뒤로 무등산이 보인다.
신호등을 건너면 바로 광주천이 보인다. 이곳에서 살았을 땐 검은 섞은 물이 똥과 함께 떠내려가곤 했다. 냄새도 아주 지독히 났었던 곳. 지금은 그때보단 나아보인다.
지금의 광주천은 이렇게 바뀌었다. 반생태적인 청계천이 뭐가 좋다고, 전국의 작은 하천들을 모다 청계천 모냥 만들어 재끼고 있다. 그래도 이곳 광주천은 청계천보단 낫다. 최소한 콘크리트로 떡을 쳐 놓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곳을 콘크리트로 떡을 칠라믄 어마어마한 돈이 들기때문에 시재정으론 어림도 없었던듯 보인다. 그래서 이쯤에서 그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국민학교4학년때 까지 살았던 동네에 접어 들었다. 다행이도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이곳을 기록으로 남기리라 생각해왔지만 이제야 오게됬다. 골목길로 난 작은 창문. 이젠 녹이슬어 볼품없지만, 예전에 골목으로 난 이창문을 통해 늦은밤 뒷이야기들이 오가고, 야식을 파는 사람과도 거래를 해오던 방안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때도 도둑이 많았던 모양이다. 방범철망을 달아 놓았는데, 그 철망에도 멋을 부렸다.
우리가 살던 집이 어디쯤일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쯤이겠지하는 생각만 해본다. 이른 아침시간이 아닌데도 골목엔 사람구경 하기 어려웠다.
아직 오른쪽의 한옥과 양옥을 섞어놓은 듯한 집이 남아있다. 지붕은 기와를 얹었고, 벽체엔 작은 타일을 붙여놓은집. 그 당시에 지저분하게만 보이던 골목이 이젠 제법 정리가 되고 깔끔해졌다.
골목길 사거리에 들어섰다. 이곳엔 구멍가게가 있었던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길목이었던 곳이다. 여전히 이곳에 뭔가를 파는 집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서 조용해진 골목길. 낡은 리어카가 대문옆으로 세워져있다.
골목이 끝날때쯤 왼편으로 구부러지는 길과 위쪽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벽엔 동네 아이들의 낙서도 보인다.
오래된 나무로 만든 대문이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쓰러져 버릴것 같다. 대문위로는 장독대와 빨래건조대가 보인다. 아래문 틈으로는 개와 고양이들이 드나들던 또다른 문이다.
자 다시 길을 올라가 보자, 가파른 길이다. 겨울이면 눈이얼어 빙판이 되던 이 길에 사람들은 연탄재를 깨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도 했다.
중간쯤에서 아래동네를 굽어본다. 바로 저 아래보이는 길 옆으로 광주천이 흐르고 있다.
조금만 힘을 내자, 저기 길위가 이동네의 제일 높은곳이다. 자세히 보니 지금은 길 옆으로 손잡일 달아 놓았다. 동네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힘들었던 때문이리라.
드뎌 정상에 왔다. 이동네에서 젤 높은곳은 이렇게 생겼다. 내 기억으론 큰 나무가 한그루 있었던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오르도록 동네 주민은 만나지 못했다. 다만 이놈의 고양이가 왠 사람인가 하고 날 바라보고 있다.
새로난 길 주변엔 허물어져 가는 옛집의 흔적만 남아있다. 이 동네에도 다녀보니 사람이 사는 집은 몇 안돼는 모양이다.
달동네사람들은 모두가 다 가난했다. 그래서 서로의 사정을 잘 알아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옆집에 숟가락 밥그릇의 수를 알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그만큼 가깝게 알고 지내는 마을 공동체였다. 속옷을 내어 널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는 그런 삶이었다.
이제 다시는 볼수없는 광경이 될것같다. 새로운것과 편리함으로 이런 모습은 보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로 여겨지는 가난뱅이 서민들의 삶은 반지르한 콘크리트 너머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몇군데 남지 않은 달동네, 다행이도 내가 살았던 동네가 아직까지 남아있어 사진을 찍을 수 있던것에 감사한다. 다음에 갈때까지 남아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