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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디(The Lady 2011)-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여인 아웅산 수치의

성덕 2016. 11. 14. 22:47

더 레이디(The Lady 2011)-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여인 아웅산 수치의 이야기 -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여인 아웅산 수치의 이야기 - 더 레이디(The Lady 2011)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뤽 베송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더 레이디는 버마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다.
버마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나라를 건국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반대파의 암살로 죽게 되고, 암살의 주역이자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인 네 윈이 구테타를 일으켜 군사독재 정권을 만들게 된다.
시간이 흘러 영국인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로 살던 아웅산 수치는 어머니 킨 치 여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버마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버마로 돌아간 수치는 자유를 위해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총과 군화발로 탄압하고 억압하던 끔찍한 상황들을 보게 된다. 수치가 버마로 돌아온 해는 1888년으로 888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해였다. 때 마침 버마의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접한 국민들은 그녀에게 국민들의 바램을 받아들여줄 것을 요구하고 수치는 고민 끝에 아버지가 못다 이룬 민주화의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자 의무였다. 평범한 여자로 인생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녀는 험난한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그런 소망을 담았는지 영화에서 수치는 머리에 꽃 장식을 하는 것을 즐겼는데 이런 모습은 그녀의 비폭력 투쟁을 상징하는 것이다. 버마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찾아다니며 강연하고 호소하던 그녀를 군부가 호락호락 놔둘 리가 없었다. 강연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강제연행하거나 강연장주변을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로 에워싸고 위협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불법집회라며 총을 겨누고 해산을 명령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총부리를 겨누는 군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수치의 모습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다. 두려움 속에서도 머리에 꽃 장식을 한 그녀가 총을 겨눈 군인들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군부에서도 아웅산 수치를 죽이면 군부에 대한 전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골치 아픈 존재일 뿐이었다. 수치를 제거하지 못하는 군부는 민주화 운동을 방해하고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가택연금을 하게 된다.
그 이후 군부는 국민의 여론에 밀려 1990년 5월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고 아웅산 수치가 결성한 민주민족동맹(NDL)이 82%의 지지로 압승하게 된다. 그러나 군부는 오히려 선거 무효화선언을 하고 민주인사 수 백 명을 투옥한다. 총칼이 설치는 군부의 공포정치가 시작되고 수치의 가택연금도 무기한으로 연장된다. 
가택연금중 남편의 끈질긴 노력으로 아웅산 수치는 노벨평화상을 받고 세계 여러나라가 버마에 압력을 가하지만 수치는 풀려나지 못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영국의 남편이 암에 걸려 사망에 이르자 군부는 이를 핑계로 아웅산 수치를 추방하려고 하지만 수치는 남편의 죽음을 지키지 못하고 버마에 남는다. 
아웅산 수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민주화의 상징인 그녀의 행적을 이야기 하면서도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뇌 또한 잔잔히 녹여내고 있다.
아웅산 장군은 버마의 국부와 같은 존재다. 1824년부터 버마는 영국과 세 차례에 걸친 전쟁 끝에 패배하고 18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때 아웅산은 버마의 독립투사로 영국과 일본에 무력 항쟁하여 버마를 이끌어낸 사람이다. 버마의 독립을 이끌어낸 아웅산은 정부가 구성되기 전 정적에 의해 32살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한다.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국부로 떠 받들여지고 있으며 버스에 사진을 걸고 다니기도 한다.
아웅산 수치는 아버지 아웅 산 과 어머니 킨 치 사이의 세 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아버지 아웅 산과 할머니 수 그리고 어머니 치의 이름을 골고루 딴 것이다.
아웅산 수치 역을 맡은 양자경은 뤽 베송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청하였고 거절하던 뤽 베송은 그저 미얀마에 사는 독립운동가 아웅 산 수 치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인생을 시나리오를 통해 접하게 되고 결국 영화로 만들게 됐다. 
모든 프로젝트를 뒤로 하고<더 레이디>에 몰입하게 된 뤽 베송은 완벽한 아웅 산 수 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그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감옥에 갇힌 수 십만 명의 기록을 찾아보고 석방 된 몇 몇의 비얀마인들의 증언 등을 직접 조사하는 등 아웅 산 수 치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한다.
버마의 공식 국명은 미얀마이다. 이 국명은 1992년 군부에 의해 정해졌다. 그러나 민주화세력들은 국민적 동의 없이 개칭된 미얀마라는 국명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버마라는 국명을 쓰고 있다. 이 나라의 맥주는 한 종류밖에 없는데 군부가 나라이름을 바꾸고 정착시키기 위해 맥주 이름을 미얀마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