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떠나자/미얀마

미얀마 이야기(2) 바간(오뽜~ 나올때 까지 기다릴께~)

성덕 2016. 11. 15. 22:28

미얀마 이야기(2) 바간(오뽜~ 나올때 까지 기다릴께~)

바간의 아침은 쌀쌀하다.
바간 미얀마의 오래된 도시로 약 2500여개의 불탑이 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불탑을 돌아보기 전에 출출할지도 모르는 배를 채우기 위해 전통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쁘장하게 생긴 처자(?)가 다가오더니 대뜸 얼굴에 하연 분을 발라준다. 타나카다. 일본어처럼 들리는 이것은 이곳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화장품이다. 일반가정집에서는 나무를 돌에 갈아서 바르던데 역시 시장엔 상품으로 나와 있다. 이 아가씨가 작은 것 하나를 선물로 주고는 이제 내 물건을 사달라고 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따라다니면서 조른다. 결국 물건을 하나 사주긴 했지만 덕분에 시장구경을 제대로 하진 못했다.
이제 본격적인 불탑순례가 시작되었다. 아노라타왕이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의 치아유골이 탑 내부에 있다는 쉐지곤 파고다는 아노라타(Anawrahta)왕이 1059년 건축을 시작하여 아노라타왕의 아들인 쟌시타(Kyanzittha)가 1085년 완성한 파원이다. 약 50미터의 높이와 폭을 자랑하는 웅장한 건축물로 전체가 금박으로 덮혀 있는 불탑이다. 최초의 버마 건축양식의 불탑이다.
부처님제자 아난다의 이름을 딴 아난다 사원, 1091년 Anawrahta(1044~1077년)왕대 건립을 시작하여 크얀지따하(Yanzittha. 1084~1113년)왕때 완성된 총 면적 555평방 미터로 도시 동쪽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아난다사원은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며 내부에는 입불상이 모셔져 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사원이다. 히말라야산의 전설의 난달뮤라(Nandamula)동굴을 본 따 건축되었고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존자의 존함을 따서 명명하였다. 한쪽면의 길이가 53m 사각형의 기초단 위에 6개의 단을 만들어 둥근 지붕을 얹고, 그 위에 51m높이의 탑이 세워졌다. 건립 900주기를 맞아 1990년에 금박을 입혔다. 사원 내에는 9.5m높이의 부처상이 있다. 각각의 단 벽면에는 액자형태의 여러 부조물이 새겨져 있고 단 아래에는 부처의 교화 장면, 단 동쪽 면은 3명의 신들, 마라(Mara)라는 악을 물리친 부처의 환희에 찬 모습을 단의 서쪽면에는 마라(Mara)의 무리, 동물, 악마 등을 새겨놓았다. 그 위의 단 면에는 자타카(Jataka)의 업적을 새겨 놓았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108배를 했다.
띨로민로왕에 의해 1211년에 세워진 띨로민로사원은 전체 3층 높이로 46m에 달한다. 사원은 석고와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말 그대로 바늘하나 들어가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지어졌다.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건축 설계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벽 문양이 매우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마누하사원 - 마누하는 몬족의 왕국이었던 타톤의 왕이다. 아나우라타 왕이 타톤의 마누하 왕에게 불교 경전을 요청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아나우라타 왕이 침략하여 타톤을 멸망시켰다. 마누하 왕은 아나우라타 왕에게 잡혀 지내다 1059년에 풀려났다. 마누하 파고다는 그의 감옥 생활을 묘사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고다의 외부는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작은 직사각형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고다 내부에는 앞쪽에 3개의 좌불이 있고 뒤쪽에는 커다란 1개의 와불이 있다.
파고다 내부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몹시 답답하다. 이것은 마누하 왕이 포로로 잡혀서 감옥 생활을 하였을 때, 비좁은 감옥에서 느꼈던 기분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 뒤쪽의 와불상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는데 이것은 죽음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임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한 국가의 왕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국가가 망하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와서 감옥 생활을 한다는 것이 큰 괴로움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마누하 왕이 바간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감옥에서 지냈던 답답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미얀마 국민들은 정부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이 사원에 시주함으로써 자기들이 포로와 같이 고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사원앞에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있고 그 나무를 둘러싸고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사원에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오뽜, 여기봐, 나올때까지 기다릴께”라고 우리말로 소리를 내지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무런 응대를 안하자. “아저씨, 할부지”하며 물건사라고 떠들어 댄다.
어찌나 불러댔는지 목이 쉬었다. 한국사람들이 가르친 것인지 스스로 알아서 한 것인지 모르지만 씁쓸한 마음이 든다.
미얀마의 사원을 돌아보면서 의문점이 생겼다. 어떤곳은 파야, 어떤곳 은 파고다인데 무슨 기준으로 다르게 부르는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겨우 뜻을 알았다. 제디 - 탑내부가 막힌 탑, 탑 내부 둘레에 통로가 없고 그에 따라 통로 양쪽에 벽감장식이나 벽화가 없다. 대표적인 곳이 쉐지곤, 쉐산도, 밍글라제디, 부파야이다.
파토-탑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통로가 있고, 대부분 사방에 커다란 불상이 있다. 통로 양쪽 벽에 수많은 불상이나 벽화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아난다, 따마양지, 마누하, 술라마니이다.
스투파-사리나 유물이 모셔져 있는 탑
파고다-탑의 총칭
파야-파고다(스투파)와 함께 부속불당건물이나 수도원 등이 있는 사원(절)을 의미한다.
어찌됐든 가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야하는데 나는 다녀온 후 후기를 쓰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미얀마는 다시 가보면 그제서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질 무렵 쉐산도 파고다에 갔다. 쉐산도는 아나와타(Anawratha 1044~1077)왕이 1057년에 건립하였다. 파고다 안에는 바고왕이 크메르의 침략으로부터 구해준 고마움의 표시로 준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있다. 경내에는 30m의 와불이 있다. 아나와타왕은 타톤(Thaton)을 정복한 후, 파고다를 지었다. 5개의 테라스에는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설화의 아름다운 장면이 테라스코타에 장식되었다.
쉐산도에서의 일몰은 미얀마를 대표하는 사진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과 작가들이 이 장면을 찍으려 몰려든다. 나도 거기에 한목 거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탑의 난간에 걸터앉아 일몰을 감상했다. 너무 유명한 사진들을 봐와서인지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그 시간에 뒤편을 더 살펴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차를 타러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놀라운 건 마누하 사원에서 “오뽜”, “아저씨”, “할부지” 하고 따라다녔던 여자아이가 이곳까지 와서 나를 알아보고는 또 다시 “오빠~”하고 불러댄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조그마한 아이에서부터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옆서나 물건들을 들고 삼 달라, 투 달라, 원 달라를 외쳐대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나라 사람들의 노동자 평균 일당이 3,000짯 정도(우리돈으로 5,000원)라고 한다. 노동자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 보다 아이들이 관광객 한사람 붙잡고 1달러(약 1,200원)짜리 물건을 몇 개 팔면 그게 훨씬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물건을 팔러 거리로 나온다고 한다.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원에서 오빠를 부르며 따라다니던 아이가 오토바이 뒤에 타고 앞서 가면서 “오뽜 안녕~”하고 외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