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인도양에서 조사된 산호초의 70%내지 90%가 이미 죽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 산호초는 전세계 물고기 종(種)의 25%의 서식처이며, 또한 다른 곳에서 잡히는 많은 물고기 종의 산란장이다. 바다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갈 때, 산호초에서 살고 있는 해조류들은 소멸되어버리고, 그리하여 그들이 내놓는 당(糖)이 없어짐에 따라 폴립들이 굶주리게 된다.
- 서문 중에서 -
내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처음 본 것은 2003년 INEB한국대회에서였다. 많은 외국인사들이 초청되었는데, 그중에서 눈에 가장 띄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후 수경스님이 화계사 주지로 계실때 화계사에서 발우공양을 하고 강연회를 했던 모습까지 하면 두번은 만난샘이다.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가 라다크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것과 이후 개발 되어가는 과정속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부분적으로 발췌를 해 보았다.
라다크라는 이름은 아마도 “고갯길이 있는 땅” 이라는 뜻의 티베트 말, ‘라-다그스’에서 나온 것 같다. 히말라야의 그늘 속에 있는 라다크는 커다란 산맥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고지대의 황무지이다. 최초의 이곳 주민은 북부 인도의 몬족과 길기트의 ‘다-드’라는 두 아리안족이었다.
문화적으로 라다크는 티베트에 속하고 실제로 흔히 작은 티베트라고 불린다. 언어, 예술, 건축, 의약, 음악 등이 모두 이러한 유산을 반영한다. 티베트의 대승불교가 주된 종교이고 달라이 라마가 정신적 지도자이다. 수세기 동안 라다크 출신의 승려들이 티베트의 승원에서 공부를 했고, 상품과 사상의 상호교환이 계속되고 있다.
함께살기
내가 라다크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내가 더러운 옷을 막 물에 담그려고 할 때 일곱 살도 채 안된 어린 소녀가 물길의 위쪽에서 왔다. “그 물에 옷을 넣으면 안돼요” 하고 그 소녀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돼요.” 아이는 적어도 한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아래쪽 마을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물을 쓰면 돼요. 저것은 그냥 밭으로 가는 거예요.”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그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거름이 될 수 있다.
익혀서 발효시킨 곡식에 물을 부어 네 번이나 술을 걸러내었다. 그리고나서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야크털 담요 위어 널어 말려서 나중에 갈아서 먹을 수 있게 한다. 기름을 짜내고 나서 갈색의 반죽처럼 된 살구씨의 찌꺼기는 조그만 컵 모양으로 만든다. 나중에 그것이 딱딱해지면 그 컵을 물레가락을 돌리는 데 쓴다. 작은 음식조각들이 들어있는 설거지 물조차도 짐승들에게 적으나마 여분의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하여 남겨 둔다.
옷이 너무 낡아서 바느질도 할 수 없을 때는 진흙에 뭉쳐서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데 쓴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문자 그대로 낭비란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그 빈약한 자원만 가지고 농부들은 거의 완전한 자립에 도달하였다. 바깥세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고작 소금, 차, 그리고 요리기구나 연장을 위한 금속류 한두가지뿐이었다.
농부들은 짐승들에게 다가올 즐거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 한다.
오, 너 아름다운 짐승이여, 너 튼튼한 짐승이여!
너의 꼬리는 길고 뿔은 하늘에 닿는다!
우리 밭을 갈아주렴.
우리를 위해 지금 힘껏 일해주렴.
그러면 너희를 초원으로 데려가주마.
길게 자란 풀과 꽃을 먹고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곳에!
오, 너 아름다운 짐승아!
겨울에 라다크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데(대개 염소를 먹지만 야크와 ‘조’도 먹는다)그러지 않고는 생존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고기는 먹는 일이 없다.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공급할 수 있는 커다란 동물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먹는다면 훨씬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 짐승을 죽이는 일은 가볍게 여겨지지 않고, 반드시 용서를 빌고 많은 기도를 올린 후에야 한다.
내가 타고 짐을 싣는 짐승들,
나를 위해 죽임을 당한 짐승들,
내가 고기를 먹은 모든 짐승들,
그들이 빨리 부처가 되기를.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협동은 많은 사회관습 속에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파스푼’이다. 마을의 각 가정은 출생, 결혼, 사망의 시기에 서로서로 도와주는 몇 가구로 된 집단에 속해 있다. 파스푼은 장례때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파스푼 구성원들이 시신을 씻고 준비하는 책임을 맡는다.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서는 아주머니, 아저씨, 비구, 비구니들을 포함해서 누구나가 몹시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에 속해 있다. 어머니가 자녀들 모두와 떨어져서 혼자 있는 경우는 없다.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의 삶의 일부이고 손자녀들의 삶의 일부인 채로 있다.
화성에서 온 사람들
한 마을에서 카메라, 사탕과자, 펜으로 무장한 여행자 무리가 실제로 마을을 공격하다시피 하는 것을 보았다. 초록, 빨강, 파랑으로 현란하게 차려입은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의 얼굴에 한마디 말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또 다음번의 피해자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분노한 여행자, 1990년
하루에 관광객 한사람이 쓰는 것은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년 동안에 쓰는 금액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돈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 즉 집에 돌아가면 살아남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음식이며 옷, 거처에 모두 돈, 그것도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깨닫디 못했다. 이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그들은 갑자기 가난하다고 느꼈다.
서구의 영향이 갑작스럽게 밀려옴으로 인해 일부 라다크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도매금으로 거부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현대성의 상징들, 선글래스,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 지나치게 작은 치수의 청바지 등을 향해 정신없이 쫓아다닌다. 청바지가 더 매력적이고 편안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대적인 삶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라다크에서 2,000년 동안 보리 1킬로그램은 그냥 1킬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값이 얼마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오늘 10루피가 있으면 보리 2킬로그램을 살 수 있는데, 내일이면 값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끔찍해요” 라고 라다크 친구들은 말한다. “모두들 너무나 탐욕스러워져 가요. 전에는 돈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돈 뿐이에요.”
변하고 있는 라다크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충격적인 교훈의 하나는 현대세계의 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개발의 결과로 현대화된 부문의 라다크 사람들은 기술의 속도로 경쟁해야 하는 경제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개발 속임수
라다크를 개발하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라다크 개발관, 1981년
개발의 전도사들-관광객들, 광고 및 영화의 이미지들-은 암암리에 라다크 사람들에게 그들의 전통적인 방법은 뒤떨어진 것이고, 현대과학이 자연자원을 잡아늘여서 훨씬 더 많이 생산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해왔다. 개발은 불만과 탐욕을 자극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발은 천년 이상 사람들의 필요을 충족시켜온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라다크 사람들은 가까운 주위의 자원을 놀라울 만큼 교묘하고 솜씨좋게 사용했고, 비교적 안락하게 그리고 부러울 만큼 안정되게 사는 방법을 고안 해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가진것은 무엇이든 충분하지 않다.
먼 오지의 자급경제 속에서는 산업세계의 중심에서든 GNP를 사회복지의 주 지표로 보는 체계에서는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삼림을 모조리 베어넘기더라도 국가의 대차대조표는 더 나아져 보인다. 왜냐하면 벌목이 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가 증가하고, 사람들이 전축이나 비디오를 잃어버려서 새로 사거나, 병자나 노인들을 값비싼 보호시설에 맡기거나, 정서나 스트레스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도움을 받거나, 물이 너무 오염되어서 생수를 사먹으면 이 모든 것이 GNP를 높이는 데 이바지 하고, 경제성장으로 측정된다.
자기의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보다 나라의 다른 편에서 키위서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려서 만든 화려한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으면 경제를 위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소비는 물론 더 많은 운송, 더 많은 화석연료, 더 큰 오염, 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더 큰 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GNP의 증가를 의미하고, 그래서 장려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살고 있고 나름대로 자긍심과 문화를 갖춘 한 공동체가 개발의 힘에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은 순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코 살수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형태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지구의 수명이 100만년이라면 70만년 정도는 단축시켜 버리는 꼴이고 파멸로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의 사회는 작은 공동체 단위의 생활패턴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이 순환고리가 이어져야 하고 또 생태적이어야 한다. 농약과 성장촉진제가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길러낸 곡물을 먹고, 지붕은 곡물수확을 하고 나온 볕집으로 올린다. 빗물은 볕집에 있던 여러 가지 유기물들과 함께 곡물이 자라는 토양으로 스며들어 비옥하게 만든다. 가축은 좁디좁은 울타리가 아닌 자유롭게 넓은 땅에서 여러 가지 해충과 벌레를 잡아먹고 마음껏 자라게 된다. 가축들의 배설물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으로 사용된다.
이런 순환되는 생태시스템이 아니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마음과 생각을 보태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도양에서 조사된 산호초의 70%내지 90%가 이미 죽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 산호초는 전세계 물고기 종(種)의 25%의 서식처이며, 또한 다른 곳에서 잡히는 많은 물고기 종의 산란장이다. 바다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갈 때, 산호초에서 살고 있는 해조류들은 소멸되어버리고, 그리하여 그들이 내놓는 당(糖)이 없어짐에 따라 폴립들이 굶주리게 된다.
- 서문 중에서 -
내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처음 본 것은 2003년 INEB한국대회에서였다. 많은 외국인사들이 초청되었는데, 그중에서 눈에 가장 띄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후 수경스님이 화계사 주지로 계실때 화계사에서 발우공양을 하고 강연회를 했던 모습까지 하면 두번은 만난샘이다.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가 라다크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것과 이후 개발 되어가는 과정속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부분적으로 발췌를 해 보았다.
라다크라는 이름은 아마도 “고갯길이 있는 땅” 이라는 뜻의 티베트 말, ‘라-다그스’에서 나온 것 같다. 히말라야의 그늘 속에 있는 라다크는 커다란 산맥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고지대의 황무지이다. 최초의 이곳 주민은 북부 인도의 몬족과 길기트의 ‘다-드’라는 두 아리안족이었다.
문화적으로 라다크는 티베트에 속하고 실제로 흔히 작은 티베트라고 불린다. 언어, 예술, 건축, 의약, 음악 등이 모두 이러한 유산을 반영한다. 티베트의 대승불교가 주된 종교이고 달라이 라마가 정신적 지도자이다. 수세기 동안 라다크 출신의 승려들이 티베트의 승원에서 공부를 했고, 상품과 사상의 상호교환이 계속되고 있다.
함께살기
내가 라다크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내가 더러운 옷을 막 물에 담그려고 할 때 일곱 살도 채 안된 어린 소녀가 물길의 위쪽에서 왔다. “그 물에 옷을 넣으면 안돼요” 하고 그 소녀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돼요.” 아이는 적어도 한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아래쪽 마을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물을 쓰면 돼요. 저것은 그냥 밭으로 가는 거예요.”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그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거름이 될 수 있다.
익혀서 발효시킨 곡식에 물을 부어 네 번이나 술을 걸러내었다. 그리고나서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야크털 담요 위어 널어 말려서 나중에 갈아서 먹을 수 있게 한다. 기름을 짜내고 나서 갈색의 반죽처럼 된 살구씨의 찌꺼기는 조그만 컵 모양으로 만든다. 나중에 그것이 딱딱해지면 그 컵을 물레가락을 돌리는 데 쓴다. 작은 음식조각들이 들어있는 설거지 물조차도 짐승들에게 적으나마 여분의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하여 남겨 둔다.
옷이 너무 낡아서 바느질도 할 수 없을 때는 진흙에 뭉쳐서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데 쓴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문자 그대로 낭비란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그 빈약한 자원만 가지고 농부들은 거의 완전한 자립에 도달하였다. 바깥세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고작 소금, 차, 그리고 요리기구나 연장을 위한 금속류 한두가지뿐이었다.
농부들은 짐승들에게 다가올 즐거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 한다.
오, 너 아름다운 짐승이여, 너 튼튼한 짐승이여!
너의 꼬리는 길고 뿔은 하늘에 닿는다!
우리 밭을 갈아주렴.
우리를 위해 지금 힘껏 일해주렴.
그러면 너희를 초원으로 데려가주마.
길게 자란 풀과 꽃을 먹고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곳에!
오, 너 아름다운 짐승아!
겨울에 라다크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데(대개 염소를 먹지만 야크와 ‘조’도 먹는다)그러지 않고는 생존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고기는 먹는 일이 없다.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공급할 수 있는 커다란 동물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먹는다면 훨씬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 짐승을 죽이는 일은 가볍게 여겨지지 않고, 반드시 용서를 빌고 많은 기도를 올린 후에야 한다.
내가 타고 짐을 싣는 짐승들,
나를 위해 죽임을 당한 짐승들,
내가 고기를 먹은 모든 짐승들,
그들이 빨리 부처가 되기를.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협동은 많은 사회관습 속에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파스푼’이다. 마을의 각 가정은 출생, 결혼, 사망의 시기에 서로서로 도와주는 몇 가구로 된 집단에 속해 있다. 파스푼은 장례때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파스푼 구성원들이 시신을 씻고 준비하는 책임을 맡는다.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서는 아주머니, 아저씨, 비구, 비구니들을 포함해서 누구나가 몹시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에 속해 있다. 어머니가 자녀들 모두와 떨어져서 혼자 있는 경우는 없다.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의 삶의 일부이고 손자녀들의 삶의 일부인 채로 있다.
화성에서 온 사람들
한 마을에서 카메라, 사탕과자, 펜으로 무장한 여행자 무리가 실제로 마을을 공격하다시피 하는 것을 보았다. 초록, 빨강, 파랑으로 현란하게 차려입은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의 얼굴에 한마디 말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또 다음번의 피해자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분노한 여행자, 1990년
하루에 관광객 한사람이 쓰는 것은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년 동안에 쓰는 금액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돈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 즉 집에 돌아가면 살아남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음식이며 옷, 거처에 모두 돈, 그것도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깨닫디 못했다. 이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그들은 갑자기 가난하다고 느꼈다.
서구의 영향이 갑작스럽게 밀려옴으로 인해 일부 라다크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도매금으로 거부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현대성의 상징들, 선글래스,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 지나치게 작은 치수의 청바지 등을 향해 정신없이 쫓아다닌다. 청바지가 더 매력적이고 편안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대적인 삶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라다크에서 2,000년 동안 보리 1킬로그램은 그냥 1킬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값이 얼마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오늘 10루피가 있으면 보리 2킬로그램을 살 수 있는데, 내일이면 값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끔찍해요” 라고 라다크 친구들은 말한다. “모두들 너무나 탐욕스러워져 가요. 전에는 돈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돈 뿐이에요.”
변하고 있는 라다크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충격적인 교훈의 하나는 현대세계의 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개발의 결과로 현대화된 부문의 라다크 사람들은 기술의 속도로 경쟁해야 하는 경제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개발 속임수
라다크를 개발하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라다크 개발관, 1981년
개발의 전도사들-관광객들, 광고 및 영화의 이미지들-은 암암리에 라다크 사람들에게 그들의 전통적인 방법은 뒤떨어진 것이고, 현대과학이 자연자원을 잡아늘여서 훨씬 더 많이 생산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해왔다. 개발은 불만과 탐욕을 자극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발은 천년 이상 사람들의 필요을 충족시켜온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라다크 사람들은 가까운 주위의 자원을 놀라울 만큼 교묘하고 솜씨좋게 사용했고, 비교적 안락하게 그리고 부러울 만큼 안정되게 사는 방법을 고안 해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가진것은 무엇이든 충분하지 않다.
먼 오지의 자급경제 속에서는 산업세계의 중심에서든 GNP를 사회복지의 주 지표로 보는 체계에서는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삼림을 모조리 베어넘기더라도 국가의 대차대조표는 더 나아져 보인다. 왜냐하면 벌목이 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가 증가하고, 사람들이 전축이나 비디오를 잃어버려서 새로 사거나, 병자나 노인들을 값비싼 보호시설에 맡기거나, 정서나 스트레스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도움을 받거나, 물이 너무 오염되어서 생수를 사먹으면 이 모든 것이 GNP를 높이는 데 이바지 하고, 경제성장으로 측정된다.
자기의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보다 나라의 다른 편에서 키위서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려서 만든 화려한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으면 경제를 위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소비는 물론 더 많은 운송, 더 많은 화석연료, 더 큰 오염, 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더 큰 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GNP의 증가를 의미하고, 그래서 장려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살고 있고 나름대로 자긍심과 문화를 갖춘 한 공동체가 개발의 힘에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은 순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코 살수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형태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지구의 수명이 100만년이라면 70만년 정도는 단축시켜 버리는 꼴이고 파멸로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의 사회는 작은 공동체 단위의 생활패턴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이 순환고리가 이어져야 하고 또 생태적이어야 한다. 농약과 성장촉진제가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길러낸 곡물을 먹고, 지붕은 곡물수확을 하고 나온 볕집으로 올린다. 빗물은 볕집에 있던 여러 가지 유기물들과 함께 곡물이 자라는 토양으로 스며들어 비옥하게 만든다. 가축은 좁디좁은 울타리가 아닌 자유롭게 넓은 땅에서 여러 가지 해충과 벌레를 잡아먹고 마음껏 자라게 된다. 가축들의 배설물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으로 사용된다.
이런 순환되는 생태시스템이 아니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마음과 생각을 보태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