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떠나자/인도

인도 - 야간버스는 한 번이면 족하다

성덕 2015. 7. 14. 11:52

마날리를 떠나 다시 델리로


추웠던 곳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지루해진 걸까.. 우린 델리로 향하는 버스표를 구하고야 말았다. 이유인즉 일행 중에 2명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고, 남은 2명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델리로 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남은 여정을 살펴보면서 의견을 모았다.

<새벽녁의 메인 바자르인 빠하르간지의 모습>


한 번만 경험하고픈 야간버스 여행
델리행 버스표는 시팅(좌석)이 350rs, 슬리핑(침대칸)이 500rs 이다. 나이든 두 분은 슬리핑으로 조금이라도 젊은 우린 시팅으로 나눠타고 델리로 오는 야간버스투어가 시작되었다. 밤에 버스를 타는 것은 정말 지겨울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과 돈을 아끼려면 할 수 없다.
이 버스는 좌석과 슬리핑이 다 팔려도 입석표를 파는 것 같았다. 버스 통로에는 온갖 짐들이 즐비하고 짐이 들어차지 않은 곳엔 자리를 잡지 못한 인도인들이 천을 온몸에 둘둘말아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몇 시간만에 쉬는 시간인데도 이런 통로의 사정(밖에 나가려면 웅크려 자고있는 사람들 사이를 밟고 가야한다)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을 지경이었다.


버스는 어쩌다 한번 들르는 휴게소에 멈췄다. 뭐 나름 정해진 휴게소인것 같았지만 깜깜한 밤중인데다 잘 보이지도 않는 허름한 가게(단지 그곳밖에 없다)앞에 버스가 멈춘다.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나가서 가게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먹고 있었다. 그곳에서 음식을 사먹기란 어려울듯 싶어 화장실만 다녀오기로 했다. 변변한 화장실도 없기 때문에 그냥 어두컴컴한 곳에 가서 볼일을 보고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다시 버스안으로 기어 올라왔고 버스는 떠났다.


우리가 탄 버스는 디럭스버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완행버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침대칸은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다. 2인용 좌석의 폭에 합판으로 얹어 놓은 그곳에 두 명이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개인의 배낭을 넣어야하고, 신발도 벗어들고 들어가야 분실할 염려가 그나마 좀 줄어든다. 그러나 배낭과 배낭사이에 꼭 끼워 넣었던 신발이 한참 자다가 일어나 보면 없어져 있다. 찾아보니 아래 통로에 떨어져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누가 가져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번엔 배낭과 배낭을 체인으로 연결하고 신발도 함께 묶었다.


버스는 우리와 달리 휴식의 개념이 좀 다르다. 버스운전기사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차를 멈추고 화장실 간다. 그 때를 맞춰 손님들도 우르르 몰려나가 화장실을 간다. 내가 탄 버스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인도여행 내내 탔던 버스들은 모두 그렇게 했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사람들이 다 자는데 버스가 멈추더니 기사아저씨가 물통을 들고 저멀리 안보이는 곳으로 간다. 틀림없이 큰것이 보고싶은 모양이다. 차가 안흔들리자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너도나도 화장실을 간다.


오후 3시에 버스를 타고 다음날 7시 30분에 델리의 끝인 티베탄 꼴로니에 도착했다. 16시간이 넘는 동안 차안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거려야 했고, 뒷자석에서 인도인 한 가족의 떠드는 소리를 밤새 들어야만 했다.


배낭을 잃어버린 여행자

티베탄꼴로니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수많은 오토릭사꾼들에게 둘러쌓여야만 했다. 그중 한 아저씨와 흥정을 하다 다른아저씨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서 끼어들었다. 그아저씨에게 가려고 하니까 두 아저씨 사이에 싸움이 날뻔했다. 왜 내 손님을 채가냐고 하는 듯 보였다.


우린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서 다른 택시를 탔다. 택시는 아이가 운전을 했는데 자신의 집근처로 간다. 그러면 아침을 먹고 나온 아이 아버지가 나와서 운전을 하고 아이는 식사를 하러 집으로 들어간다. 가사를 돕는 일이 인도에는 이처럼 흔하다. 아니 아이들이 가사를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다. 


빠하르간지의 스링랑카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려고 하다가 인도에서 살고있는 이화승씨를 만나 스카이뷰 호텔에 5인실을 500rs에 사용하기로 하고 옴겼다. 일행 중 두 분은 한국으로 들어갈 준비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난 전화방에 갔다가 가방과 여권을 잃어버린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입고 있던 옷과 침낭 외에는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여권과 패스포트도 배낭에 넣어 뒀으니 그것도 없어졌을 밖에. 겨우 대사관에 신고하고 나오던 길이라고 한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던 청년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와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도 여행을 계속하겠다던 청년이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오토릭샤를 이렇게 흥정을 했었으나....>


릭샤왈라에게 속다
다음날 우린 함께하는 마지막 관광으로 후마윤의 무덤을 보자고 했다. 숙소 앞에서 70rs에 흥정한 릭샤를 타고 후마윤의 무덤으로 향하던 중 릭샤왈라(왈라는 인도말로 우리로 치자면 ‘꾼’에 해당한다)가 갑자기 릭샤를 세우며 다 왔다고 한다. 후마윤무덤이 어디인지 물어보는 우리에게 후마윤무덤 이정표를 가리키며 저쪽 모퉁이로 조금만 걸어간면 된다고 한다. 목적지 앞까지 데려 달라고 하자 완강히 거부한다. 자기는 70rs에 목적지까지 왔다고 한다. 우리가 흥정을 해서 값을 깎자 그 값만큼만 데려다 줬는지도 모른다.


<릭샤를 타고 가면서 찍은 후마윤무덤 가는길>


<릭샤에서 내려 한없이 걸었던 길>


<안돼는 말로 물어물어 찾아가던 일행들> 


<후마윤무덤이라는 이정표 아래 떨궈놓고 간 릭샤왈라>


<코넛플레이스에서 오토릭샤로 20분 정도 40~50rs 면 간다고 했는데 우린 70rs를 주고도 속았다. 입장료는 250rs 또는 5달러, 캠코더 촬영권으로 25rs를 추가로 받는다>


릭샤왈라가 알려 준 이정표를 따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다. 우린 그때야 속았다는 걸 알았다.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서 갔다. 물어물어 후마윤 무덤을 찾아 갔는데 3km정도를 걸었던 것 같다. 책에서만 봤던 사기 릭샤왈라를 우리가 만났다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이문을 지나면 이사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래도 후마윤무덤을 보게 됐다고 좋아라 하는 영순씨 ^^>


<후마윤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건축물>


<후마윤의 무덤을 배경으로 ㅋㅋㅋ>


<네모반듯하게 만든것 같은 후마윤의 무덤은 수로를 통해 물이 주위를 돌게 만들었다>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으로, 그의 사후 페르시아 출신 부인 하지 베굼Haji Begum 의 지시에 따라 건설 됐다고 한다. 설계, 감독 역시 페르시아 출신의 건축가인 미락 미르자 기야스 Mirak Mirza Ghiyas가 맡았지만 건축사적으로는 페르시아 건축보다 무굴 양식에 가깝다. 심지어 무굴 제국의 건축 양식은 후마윤의 무덤으로 시작돼 타즈 말할에서 완성됐다고도 할 정도다.

후마윤의 무덤에 들어서면 탁 트인 정사각형 구조의 정원을 볼 수 있다. 정원은 수로에 의해 "田"자 모양을 이룬 뒤 다시 수 많은 작은 정사각형으로 쪼개지는 형태,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건조한 사막에서 생활하는 이슬람교인에게는 낙원 사상이 담긴 곳으로 꼽힌다.

무덤의 주인공은 물론 후마윤이지만, 그의 부인인 하지 베굼, 무굴의 마지막 황제 자리를 놓고 아우랑제브와 격돌했던 다라 시코 Dara Shikoh, 무굴의 마지막 왕 바하두르 샤 2세 Bahadur Shan 2 등 궁정의 주요 인물 150여 명도 함께 묻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휴식처이자 가족 공원으로도 널리 사랑받는 다고 한다.  <출처;인도 100배>


<매일 붉은 흙을 깔고 다지는 일을하는 인도인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도 커다란 보리수와 그 아래 벤치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의 다람쥐들은 우리의 다람쥐완 약간 다른것 같다. 아래를 향해 발톱을 세우고 나무에 붙어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납짝해 보인다>


<수로옆에서 뭔가를 뜰채로 건져올리는 인도청년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는 수로에 떨어진 보리수의 잎을 걷어내고 있었다>


<이사칸의 무덤 안에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무너지다 만 건축물의 문을 통해서 들어가 면 '이사칸의 묘' 후마윤의 묘 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는데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한다. 앞에 서있는 아저씨와 빗자루질을 하는 아저씨가 손님이 보이면 따라다니면서 무덤에대해서 뭐라고 열심히 말을 한다. 그리고 나서 설명했으니 돈을 달라고 한다. 돈이 많으면 줘도 좋겠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듣고 돈을 줄만큼 여유가 없다>


<이사 칸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덤안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후마윤무덤의 입장료는 5달러, 무덤은 평온했다. 후마윤무덤의 양식을 보고 타지마할을 지었다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이곳을 둘러보고 한분은 헤어지고 다른 한분도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향했다.


<스카이뷰 호텔의 명함;24시간 룸서비스 tv, 에어컨 어쩌고 저쩌고...>
 

<전화방에서 전화하고난 영수증; 비교적 정확하게 나온다. 빠하르간지에서 pc방이나 전화의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스카이뷰 호텔골목에서 나와 맞은편 오른쪽 골목에 있는 pc방이 그나마 바가지 안씌우고 장사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도 한국말을 제법 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