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떠나자/국내여행

고원길을 걷다(1)-고개넘어 백운길

성덕 2016. 1. 28. 20:38

고원길을 걷다(1)-고개넘어 백운길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는 둘레길이 있고, 내가 사는 이곳 진안에는 고원길이 있다.
진안으로 내려온지 6개월째에 바람이 이는 고원길을 걷는다. 
바이고서(바람이 이는 고원길에 서다) 장기걷기 프로젝트 1일차는 성큼 가을로 접어든 9월 28일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고원길은 진안군 백운면에 위치한 평장야영장에서부터 시작됐다. 
고원길을 걷는 사람들은 진안읍에 위치한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 모여 카풀을 이용, 걷기 시작하는 구간까지 함께 이동한다.
평장야영장에 도착하니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고유제는 중대한 일을 치르고자 할 때나 치른 뒤에 그 까닭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하는 제사로 함께 모인 여행자들이 연말까지 세달동안 이어지는 고원길 걷기 행사가 무탈하고 재미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며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원래 초등학교였던 평장야영장은 학생수가 줄어 폐교가 되었던 것을 학생야영장으로 활용한 곳이다. 주변엔 야영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 되어 있다.
고유제가 끝나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었다. 파란 하늘과 상쾌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진안지역은 물론 전주에서도 참석하신 분들까지 45명이다.
평장야영장에서 약 1km 정도를 가다보면 영모정(永慕亭)을 만나게 된다. 원노촌마을과 하마치마을로 갈라지는 갈림길 옆에 신의연의 효자각이 있고, 영모정은 효자각 앞 냇가에 세워져 있다. 영모정은 효자 신의연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고종 6년(1869년)에 세워졌다. 중개수(重改修)의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정면에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고, 너와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눈여겨 볼 만한 것이다. 누각 아래 사면의 각진 기둥은 거북이 머리 모양의 원형 초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단순가공한 원형 초석을 이용했다. 정면에 있는 4개의 기둥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까닭에 다른것 보다 1m정도 더 내려와 있다.
모정 남쪽 내부의 중앙에는 그 이름인 영모정과는 다른 영벽루(永碧樓)라 씌여진 현판과 가선대부 이조참판을 지낸 윤성진이 지은 상량문이 걸려 있으며, 진안군지에 영모정기(永慕亭記)가 게재되어 있다. 영모정에는 참새가 많은데, 참새도 효심을 아는지 영모정에는 똥을 싸는 일이 있어도 효자각에는 똥을 싸지 않는 것을 보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경탄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걷는 고원길은 1코스로 고개넘어 백운길이다. 평장야영장 - 영모정 - 신전마을 - 배고개 - 상백암마을 - 덕실고개 - 은현마을 - 흙두고개 - 원반송마을 - 석전마을 - 무등마을 - 원덕현마을 까지 총 10.2km 구간이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또하나의 길은 신광재 가는 1-1코스로 19.48km이다. 이 구간은 다음기회에 가보리라 생각한다.
영모정을 조금 지나 가다가 좁은 계곡을 넘는 다리를 통해 산길로 접어 들었다. 이곳에는 마을에서 흘러내려오는 오른쪽 물줄기를 중심으로 탑 2기가 있고, 탑 옆에는 선돌 1기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상당히 큰 한기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마을 어귀가 허하여 세워진 수구막이 역할을 한다. 마을의 오른쪽 날인 백호가 짧아서 이를 연장시키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기엔 이런 깊은 계곡이 있으리라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면 아름답고 시원스런 계곡이 눈에 펼쳐진다.
영모정을 지나 산길로 땀이 옷에 베어들정도로 걷다보면 탁트인 언덕을 만난다. 이 곳에서 마침 땀을 식히고 갈만한 고원의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경사진 구릉을 일궈 경작하고 있는 넓고 탁트인 언덕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돌리면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고 싶어진다. 저곳에 가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질 것이라 여기며 발길을 옮긴다.
시야가 탁 트인 언덕을 걷다보면 신전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신전마을은 소가 가로 누운 '와우혈'이어서 가루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입구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된 소나무숲 송림원이 있으며 마을의 안녕을 비는 비보풍수림으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마을 남쪽 어귀에는 당산목이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당산목이 있는 신전마을을 지나면 상백암마을을 잇는 배고개가 있다.고개 정상을 전후해 작은 모정(농부 쉼터)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해발 400m이다.
배고개를 지나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상백암마을에 도착했다.
상백암 마을에서 우리는 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고원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임과 동시에 그 길에서 마을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는 묘미가 있다. 시골마을이다 보니 농사일에 바빠서 마을 분들을 만나기는 어렵지만 이 상백암 마을에서 우리를 위해 점심에 맛난 김치찌게를 한솥 끓이고 김치를 준비해 주셨다. 바쁜 일과중에 음식을 준비해준 마을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상백암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은 얕으막한 흙담장이 남아있다. 운치있는 흙담장 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상백암마을길을 걷다보면 처마밑에 내년에 쓸 옥수수 씨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백암 마을은 마을 주변에 차돌이 많아 흰바우라 불리다가 백암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번 고원길엔 손녀와 할아버지가 함께 오셨다. 진안에 사신다는 할아버지와 도시에 나가 사는 손녀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걷는 뒷모습만으로도 훈훈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구불구불한 노란 화살표가 고원길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길바닥에 그려져 있기도 하고, 전봇대, 건물에 그려있기도 한다.
마을 길을 걷다보면 마을 사람들이 논밭으로 일 나가 있어 만나기 쉽지 않다. 집 지키는 개들의 마을 여기저기를 울리는 소리가 우렁차다.
반송마을을 지나면 마을앞을 흘러가는 섬진강을 만난다. 이곳에서 한참을 열내며 걸었던 발에 감사하며 시원한 물에 담그고 휴식을 취한다.
반송마을엔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 비는 전북기념물 제 81호로 지정되어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인 최양 선생이 산중으로 도피하면서 잠시 머물렀던 곳에 세워졌다는 비석은 그가 죽은 뒤에 유림들이 세웠으며, 비문은 노사 기정진이 썼다.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크기는 높이 1.5m, 폭 1m, 두께 0.4m이다.
최양의 자는 백함이며, 호는 만육, 본관은 전주이다. 1315년(충정왕 3)에 태어났고, 외숙인 정몽주에게 사사하였다. 29세에 대과에 장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벼슬이 보문각 대제학에 올랐다. 1392년 이성계파가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하자,팔공산으로 들어가 3년간 은거 생활을 했다.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태조가 된 이성계와 최양은 고향이 같았고 과거도 한 과장에서 보았다.
태조가 재상 자리에 불렀으나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며 벼슬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뒤 태조가 온양에서 완산 공전 팔백결을 전록으로 주어도 받지 않았다. 1424년(세종6) 74세에 죽었는데,세종은 3일간 조회를 폐하고 최양의 자손이 등과하면 지체없이 군역을 면제하라고 특령을 내렸다. 또 도승지로 하여금 치제문을 쓰게 했는데, ‘학문 도덕은 정이천 같고 절의 청직은 엄광과 같다’고 하였다.
태종이 저작하고 세종이 계술한 《금감록(金鑑錄)》에는 위와 같은 일들을 기록하여 전주이씨가 영원히 잊지 않도록 장서각에 비치하고 그 후손들에게도 보냈다. 1834년(순조 34)에 충익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최양의 사우인 서산서원과 고암서원은 훼손된 뒤 복원되지 않았으며, 덕암서원과 영계서원에서는 제향하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 소재하며 1992년 6월 20일 전라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 [晩六崔瀁先生遺墟碑] (두산백과)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자기를 여러분에게 알리는 시간이다. 보통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곳에서 자기를 소개한다.
반송마을 앞에는 전주 최씨 집안에서 심어놓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소나무가 커가면서 소반 모양을 닮아 가기에 마을 명칭을 반송이라 불렀다 한다.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과 동남쪽 성수산에서 발원하여 두원마을을 지나온 계곡의 물이 마을 앞에서 합수한다. 마을앞 도로변에 수령 450년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마을옆 논둑에 수령280년된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50여주의 나무들이 마을앞 섬진강 상류의 천변 제방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풍치림으로 가꾸고 있다. 주변의 사적으로는 박리풍 정려비, 개안정, 학남정, 장향풍 정려가 있다.
반송마을에서 반송보건진료소 앞을 지나 벼가 익어가는 누런 들판으로 향했다.
논가의 수로를 조절하는 설치물에도 고원길 표식이 보인다.
내동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노란색과 초록색과 연두색들로 물이 들었다. 눈이 호강을 한다. 저 멀리 마이산의 봉우리도 보인다.
오늘의 고원길은 원덕현 마을에서 마무리 지었다. 
덕고개리라는 옛기록이 있는 원덕현 마을은 성수면 구신리로 넘어가는 덕고개가 있어 유래한 이름이다. 예전에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워 지금도 장승배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원길을 걷는데는 참가비가 없다. 다만 함께 나눠먹을 도식락과 약간의 물과 간식, 튼튼한 다리 그리고 대자연을 그대로 담아 느낄 마음만 있으면 된다. 걷기가 끝나면 버스를 이용해 시작되는 지점까지 고이 모셔다 준다. 그곳에서 각자 타고온 카풀차량을 타고 온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다음 이어지는 코스는 전 코스가 끝났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바이고서 장기걷기 프로젝트를 마치면 진안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것과 같다. 
다음코스는 전라북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시작이다. 자 이제 진안고원의 가을을 느껴보자.